나는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주기철(1897∼1944) 목사님을 가장 존경한다. 주기철 목사님은 십계명 중 제2계명(출 20:4, 5)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셨고, 이러한 일사각오(一死覺悟) 신앙은 종교다원주의가 점점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신앙이다.
나는 처음 예수를 믿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말씀을 읽는데 ‘항상 기뻐하라’는 것이다. 그 기뻐하는 것이 ‘가끔’이 아니라 ‘항상’이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환경적으로 최악의 상황이고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것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생명을 다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요 13:34). 이것을 깨닫고 나니 ‘과연 이런 삶을 실제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되었다.
나는 이 고민의 해답을 에베소서 말씀에서 찾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장 6절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고 하였다. 예수님과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하는 존재, 범사에 감사하는 존재,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한 존재가 된 것이다. 나만을 위해 살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오직 주를 위해 사는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라!’는 종교가 아니라 ‘이미 되어진’ 종교인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과 연합된 존재로 거듭나게 되니 과거에 마음 중심으로 아멘하지 못했던 모든 말씀에 대해 마음 중심에서 “마땅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왔다. 왜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말씀대로 살 수 있는지가 바로 ‘연합’으로 풀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에베소서 3장 6절 말씀 안에 있는 ‘복음의 능력’을 보면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복음으로 내가 다 가진 자가 되고(고후 6:10), 복음으로 교회가 태동이 되고, 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부활’을 통해 모든 말씀을 믿게 한다면(요 2:22) ‘연합’은 모든 말씀을 이룰 수 있게 한다(요 15:5).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연합의 비밀’을 모르면 내 힘으로 율법을 이루려는 신념적 신앙에 빠지게 되고, 옛 습성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죄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결국 구원의 확신까지 흔들리게 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과 같이 나와 연합되어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살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육체를 가지고 사는 나를 통해서 실제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육체(body)를 입고 있는 동안 우리 안에는 옛 습성, 구습(엡 4:22)이 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옛 습성과의 싸움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다고 해도 이러한 내적(內的)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 주기철 목사님이 가신 그 길을 가게 한다. 그리고 모든 말씀을 실제 삶 가운데 누리게 하는 능력이 된다. 이 놀라운 연합의 능력이 한국교회 가운데 임하기를 기도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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