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을 전제한 것이다. 또 십자가는 부활을 전제한 것이다. 이처럼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구속은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졌다(고전 15:3∼4). 따라서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전제조건은 십자가와 부활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사실이다. 만약 어느 것을 부정하고 어느 것만 주장하는 반쪽짜리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하는 것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가르침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변증가 CS 루이스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관한 사상을 제거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체구조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독론’, 즉 예수님의 신성을 확증하는데 부활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부활은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는데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롬 1:4).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빌 2:6∼7). 부활은 예수님이 영원 전부터 계신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게 하는 증거(행 17:31)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기독론 관점에서 강조돼야한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만 아니라 ‘율법’ 또한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갈라디아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을 향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 6:14)”고 선포했다.
이때 사도 바울은 기독론이 아니라, 구원론적 관점에서 십자가의 절대성을 강조했다. 이는 십자가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유대주의자들에게 ‘십자가’외에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강조한 십자가는 부활과 대비한 십자가가 아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유대주의자들에게 ‘율법’이 아닌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속죄는 오직 십자가의 피흘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죽음이 전제된 피흘림이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레 17:11, 히 9:22).
기독론 관점에서의 부활과 구원론 관점에서의 십자가는 현대교회가 소망하는 초대교회를 재현하는데 중요하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기독론 관점에서 ‘부활’을 선포했다.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한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만 선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선포한 것이다.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확증됐을 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이자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활을 통해 깨달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히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속죄사건이다. 성령께서는 초대교회를 탄생시키는 회개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이 ‘회개’가 바로 초대교회의 출발이다(행 2:36∼38). 이처럼 부활과 십자가가 하나될 때 초대교회 같은 생명력 있는 교회가 한국교회 가운데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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