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경 / 춘천한마음교회
20대에 성형부작용으로 인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최고의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예뻐지려던 욕심 때문에 성형수술에 매달리다가 제 몸의 주인도 버렸었습니다.
▣ 가정환경 – 돈 집착
▲ 오미경 자매 Ⓒ한마음교회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4남매가 시골에서 살았고 살림은 빠듯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서는 저를 볼 때마다 돈을 저축해야 한다고 항상 가르치셨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아끼려고 한 달 정도 점심을 안 먹으니까 친구들이 왜 밥을 안 먹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가끔은 가장 싼 라면을 먹어가며 돈을 모았습니다.
한 겨울에는 기름 값 때문에 전기장판 하나로 추위를 견뎠고,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로 학기 중에는 죽도록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돈이 없는 부모님이 수시로 원망이 되었습니다.
▣ 직장 – 악착같이 저축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먼저 월급의 90%를 저축했습니다. 또한 모태신앙이었지만 이런 형편에서 십일조와 헌금은 저에게 사치라고 여겨졌습니다. 막상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내가 힘들게 번 돈을 드린다는 게 손이 떨리더라구요.
창고를 개조한 옥탑방에 살면서 가끔 경조사가 생겨도 차라리 인간관계가 끊어지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며 지독하게 살았습니다. 내가 힘들어서 번 돈 내 것이 당연하고 안 먹고 안 쓰며 저축하는데 그게 무슨 죄가 될까 생각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제 형편을 너무 잘 아시니까 충분히 이해해 주실거라 생각했습니다.
▣ 눈 콤플렉스
어려서부터 연예인들을 동경해서 특히 외모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제 눈매를 보고 자꾸 사나워 보인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나도 언젠가는 눈을 예쁘게 성형해서 연예인들처럼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대학 졸업 후 간호사 면접을 봤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제 눈 때문에 떨어질 뻔했습니다. 성적은 좋지만 제 눈매가 너무 매서워서 환자들을 마주하기에는 인상이 너무 차가워 보인다는 이유였습니다. 다행히 직장에는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사회에서는 성실함이나 성적보다 외모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성형을 해야 되겠다는 결단이 서더라구요.
그 후 어느 정도 돈이 모아지니까 그 동안 어려서부터 돈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모든 억울함들이 성형을 시작으로 터지기 시작하더라구요. 내가 힘들게 번 돈인데 이제는 나를 위해 쓰고 싶더라구요. 나를 위해서라면 성형이든 쇼핑이든 많은 돈을 쓰면서 힘들었던 지난날을 위로받고 만족을 찾으려 했습니다.
▣ 하나님을 버림
사실 어려서부터 모태신앙으로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을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하고 나를 억압하는 분으로만 생각되니까 점점 더 멀어지더라구요. 그래도 오랜 신앙생활로 학습 되어서 그런지 혹시 하나님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보기에는 세상에 좋은 게 많은 거 같은데 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나는 일단 세상을 겪어봐야겠습니다! 겪어보고 나서 꼭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이런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하고 내 마음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세상을 향해 직행했습니다.
▣ 첫 번째 수술
그 첫 번째는 성형이었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성형을 했는데 수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남자들이 정말 줄을 서더라구요. 사회생활 하는데 너무 편한 거예요. 여자는 이쁘면 다 용서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구요.
▣ 이민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됐으면 너무 행복해야 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그것으로도 만족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또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두 번째가 이민이었습니다. 얼굴도 너무 이뻐졌겠다,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멋지게 한 번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메리칸 드림!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지잖아요.
이민을 결정하고 나니까 어차피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텐데,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에 눈을 아주 완벽하게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그냥 쉽게 되더라구요.
▣ 2차 성형실패 – 절망
그때 당시 심은하 눈, 이영애 눈, 이런 스타일이 유행이었는데요. 패션도 유행이 있듯이 성형도 유행이 있습니다. 이번 수술만 잘 되면 진짜 내가 심은하가 되겠구나, 내가 이영애가 되는구나! 부푼 가슴을 안고 수술대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라 그런지 처음보다 너무 아프더라구요. 이상하게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예뻐지려고 꾹 참았습니다. 한 3시간 정도 넘게 수술을 한 거 같아요. 드디어 수술을 다 마치고 병원직원이 거울을 보여 주는 순간! 정말 헉! 소리가 나더라구요.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조금만 있으면 붓기가 빠진다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이건 정말 아닌데... 이미 수술은 해버려서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1달을 기다려도, 3달을 기다려도 붓기가 안 빠지는거예요. 아직 이민 갈 준비가 안 되어서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없는 상황인데.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 볼 수도 없고, 말도 제대로 못하겠더라구요. 하루하루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직원이 제 눈을 보고 추하다고 하더라구요. 남자 직원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습니다.
▣ 3차 성형부작용
성형수술은 다른 수술하고 달라서 실패를 했더라도 바로 수술을 할 수가 없고 최소 6개월 정도 지나야 재수술이 가능합니다. 그때까지만 버티자, 6개월만 지나면 다시 고칠 수 있어, 다시 예전처럼 예뻐질 수 있을 거라는 마지막 희망 하나로 죽을힘을 다해 버텼습니다.
하루 빨리 수술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직장 때문에 수술 스케줄이 자꾸 미뤄지니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결국 저는 수술을 위해서 힘들게 들어간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3번째 수술대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또 실패였습니다. 점점 갈수록 제 눈은 더 흉측해졌습니다.
한쪽 눈은 너무 당겨서 눈동자가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고, 눈은 완전히 짝짝이 눈이 됐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이 완전히 안 감겨지는 거예요. 제가 봐도 너무 혐오스러웠습니다. 거기서 제 인생이 그대로 올 스톱! 되었습니다.
▣ 폐인
직장도 그만뒀죠, 얼굴은 다 망가졌죠, 한 달반 정도는 아예 집 밖에도 나가지도 못하고 사람들도 못 만났습니다. 깜깜한 방에 불도 켜지 않고, 밥도 안 먹고 씻지도 못했어요.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면 거울에 제 얼굴이 보이니까 제가 봐도 너무 추한 거예요. 몸은 점점 말라갔고 수시로 악몽과 가위에 눌렸습니다.
어느 날은 머리가 많이 달린 괴물 같은 검은 물체가 벽 쪽에서 튀어 나오는 게 제 눈에 보이더라구요. 이미 저는 지칠 대로 지쳐서 대응 한번하지 못하고 그냥 눈을 딱! 감아 버렸습니다. 아, 이렇게 죽는 거구나. 모든 게 포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제가 죽지 않은 것이 진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제 제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인터넷 이거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저처럼 성형부작용인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하루 빨리 이 눈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게 전부였어요. 이제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정상적인 생활만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저처럼 성형부작용인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 방법을 찾아보자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방법이 없더라구요. 실패한 눈도 눈이지만, 죽고 싶은 제 마음을 붙잡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제 눈을 보고‘진짜 심하다’고 말하니까, 더 절망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을 찾기 시작
정말 너무 너무 살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모자를 푹 쓰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가 12월 달이었는데요. 동네 옆을 지나가는데 어디서 찬양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찬양 소리가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음성처럼 들리더라구요.
그제서야 ‘아! 하나님이 계셨었지.’ 그때 무슨 정신인지 모르겠지만 찬양소리가 나는 그 교회로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본당에 주저앉아 ‘하나님, 이 죄인 이제야 왔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얼마나 뜨거운 눈물이 나는지. 한 참을 그렇게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제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더라구요.
▣ 성형부작용 고침
그렇게 무작정 하나님께 기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형외과 의사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교회장로님이셨고 쌍까풀을 푸는 수술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쌍까풀 푸는 수술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버려버린 제게 살 길을 열어주시더라구요.
네 번째 수술을 통해 심하게 흉측했던 눈이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모자를 벗고 편하게 밖을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언니 때문에 대학 때 잠깐 다녔던 춘천한마음교회가 생각나더라구요. 예수님에 대한 큰 확신과 기쁨에 찬 모습이 저와는 너무 달랐거든요. 그래서 이민이고 뭐고 서울 생활을 다 정리하고 무조건 춘천 친언니네로 갔습니다.
▣ 부활의 주님께 굴복
오랜 방황 끝에 다시 찾은 한마음교회는 여전히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도한 것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미! 확실한 증거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흔들 수 없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역사의 사실로 이미, 세계사 가운데 기록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 선포된 것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더라구요.
성경대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보이셨더라구요. 그 증거가 바로 ‘부활사건’이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이 분을 안 믿고 있었던 것이지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분명히 살아계셨습니다. 진짜 내가 예수님을 죽인 죄인이었습니다.
지난 날, 내 마음대로 살아보려고 내가 주인되어 살아보려고 감히 하나님을 버렸는데. 이런 원수를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시고 부활시키심으로 그 증거를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나를 억압하고 나를 구속한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리고 그 사랑에 굴복되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오직 내 주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 고백만이 감사와 눈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가
내 마음에서 주인이 바뀌니까 그동안 우습게 여겼던 성경 모든 말씀에 다 기쁨으로 아멘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너의 물질이 누구 것이냐?’ 정확히 물어보셨습니다. ‘미경아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지난 날 내 마음에 온통 내 돈, 내 돈, 내 돈 했던 모습들이 생각났습니다.
내 주인은 예수님이신데, 나는 돈이 내 주인이었구나.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해서 나를 위해 쓰고 나를 위해 쌓았구나. 내 인생이 성형 때문에 망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 되어서 망가진 것을 정확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영원한 하늘나라에 저축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적금이 만기가 되었고, 그동안 내 것이라 착각하며 하나님의 것을 훔쳤던 몇 년 치 십일조를 모두 합해 온 마음을 다해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첫 성형수술이 성공했을 때보다 더 행복하더라구요.
▣ 몸의 주인
그리고 고린도전서 6장을 통해 ‘내 몸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나의 물질뿐만 아니라 나의 몸도 예수님의 것인데 그동안 내 몸이 내 것인 줄 알고 마구 난도질 했구나, 너무나 가슴 아프게 회개가 되었습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내 몸의 주인도 예수님이시기에 다시는 난도질하지 않겠습니다고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 변화 – 병원 전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커서 가는 곳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신 것을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춘천에 와서 대학병원에 다시 간호사로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안내 데스크에 있었는데요.
▣ 외국인 교수님 전도
거기에 있다 보면 외국인들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외국인 교수님이 몇 차례 진료를 받으러 오셨었는데, 매번 친절하게 안내를 해드리는 것을 보시더니 마음이 활짝 열리셔서 부활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음만 뜨겁지 영어단어가 입에서 바로바로 안 튀어나오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단어를 검색 해가며 아무튼 기쁘게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저보고 ‘Challenged’ ‘도전이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영어도 잘 못하면서 유창하지 않은 영어실력으로 어떻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냐, 그러면서 본인도 호주에서 교회를 다녀봤지만 부활의 복음은 처음 들어봤다고, 고맙다고 하시더라구요.
▣ 중환자실 전도
하나님께서 전도하기 제일 좋은 안내 데스크로 보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환자든 보호자든 병원에 오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부활의 주님을 날마다 자랑하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 환자 한 분이 수술하시고 중환자실로 들어가게 되셨는데요. 이분이 언제 어떻게 되실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제 마음이 너무 급한 거예요. 그래서 점심시간에도, 퇴근 후에도 환자분을 찾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또 전해드렸습니다.
오늘 죽으면 천국 갈 확신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이기신 분은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퇴원하신 후에도 환자분 집에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드렸습니다.
▣ 결혼 – 아이와 함께 전도와 양육
이렇게 전도를 하다 보니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좋은 남편을 만나 믿음 안에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출산과 함께 퇴직을 하면서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요. 아들과 함께 전도를 쉬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이 선교지니까요. 그래서 저와 비슷한 애기엄마들과의 만남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금은 9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애기엄마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 자매를 위해 반찬을 준비하고, 자녀를 돌봐주고, 먹거리를 챙기는데 아낌없이 물질을 쓰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영원한 저축인 것이 확실하니까 주는 자가 복되다고 하신 이 말씀에 기쁨으로 아멘이 되더라구요.
▣ 교회봉사
몇 달 전, 도로가 새로 나면서 교회를 이전 하게 되었는데요. 지체들과 함께 땀 흘리며 교회청소를 하면서도 너무 감사한 것은 벌써 죽었어도 몇 번을 죽었어야 할 이 몸이 이제는 주인 되신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교회공동체를 섬길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더라구요.
저는 지금, 머리속에 작은 종양이 하나 있는데요. 수술하기가 힘든 부위에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가 있을 동안만 영원한 하늘나라에 쌓을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더라구요.
하루하루 교회 공동체와 함께 신바람 나게 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