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기 형제 / 춘천한마음교회
“세상은 정말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다!” 부활하신 예수님 만나기 전에 늘 버릇처럼 한 말입니다. 소문난 효자였던 제가 아버지 제사와 학교의 고사를 폐지한 이야기입니다. 그 좋던 세상도 버렸고요.
살만한 세상인데 왜? 교회에 가지 않은 이유는 ‘효자’
세상은 정말 살만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저를 무척 부러워했지요. 예쁜 아내를 얻었지, 부부교사에 경제력도 있지, 공부 잘하는 아들․딸에, 유능한 교사로 널리 인정도 받았으니까요. 그 뿐 아니었지요. 어느 집보다 가정도 화목했고, 조카들도 박사에, 의사에, 행정고시 합격에 대단하거든요.
▲ 정연기 형제 ⓒ한마음교회
결혼하기 직전, 아내가 제게 물었습니다. “결혼하면 교회같이 다니겠어요?” “그럼! 당연하지.” 한마디로 오케이였어요. 결혼하기 위해 3년간 제 온 정성을 다했거든요. 그랬지만, 이렇게 신나는 세상이 있는데 교회 다닐 이유가 없잖아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지요. 제사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정에서 자랐거든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다른 집과 달리 7일장을 지냈습니다. 선산의 소나무를 베어 새 관을 짜고, 큰 돼지도 한 마리 잡아 성대하게 지냈으니까요.
이런 환경 때문인지, 자랑 같지만 어려서부터 소문난 효자였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신나게 놀아도 저는 불평 없이 밭에서 일했거든요.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일하면 부모님이 덜 힘들겠지?’하는 생각을 그 어린 나이에도 했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살아계실 때 조금만 더 잘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단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그 효심이 널리 알려져 40대 초에 교육감 표창과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습니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아내와 새벽기도 그리고 나의 고민
결혼 후 저는 무척 행복했고, 세상이 너무 즐거웠어요. 그런 저와 달리 아내는 신앙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뭐가 부족하냐? 힘들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했죠. 이해가 안 되잖아요.
아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주었는데도 날이 갈수록 힘들어하는 겁니다. 정말 답답했지요. ‘교회 같이 다니겠다.’고 한 약속도 조금 양심에 걸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집 근처 교회에 따라 다니기 시작했지요. 오직 아내를 위로하기 위한 한 가지 목적 때문에요.
그렇게 힘들게 지내던 아내가, 한마음교회 지체를 만나면서 서서히 안정이 되더라고요. 어느 여름방학 때, 교회 수련회에 다녀온다는 거여요. 아이들과 집안은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 했지요. 현관문을 나서는 아내에게 용돈을 넣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지요. “당신의 고민이 꼭 해결되어 돌아오기 바래.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써서요. 정말 아내의 고민이 해결되기를 바랐거든요. 아내는 감격하며 떠났습니다.
3일 째 되는 날 전화가 왔어요. 난리가 난 겁니다. 이건 아내의 목소리가 아닌 거예요. 드디어 예수님을 만나 몇 십년간의 모든 문제가 한방에 해결되었다는 겁니다.
며칠 후 돌아온 아내는 제 아내가 아니었어요. 온 몸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는데요. 얼굴이 빛난다는 말이 맞더라고요.
사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보호와 사랑을 받고만 살아와서 생활력이나 적응력, 적극성이 부족한 편이거든요. 그런 아내가 틈만 나면 ‘소파에 앉아라’, ‘성경을 펴라’, ‘따라 읽어라’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다.’ 열변을 토하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그동안 자기주장은 거의 없이 순한 양같이 제게 순종만 했거든요.
‘이 사람이 정말 왜 이러지?’ ‘이틀 동안 하늘에 올라갔다 왔나?’ 그러나 저도 무척 좋았어요. 아내가 예수를 만난 것보다 웃음을 되찾은 것이 정말 좋더라고요.
다음날부터 아내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에 가는 거예요. 하루 종일 학교와 집안 일로 정신없이 보내다가 밤 12시에 잠들어도, 또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어디 보자! 일주일을 넘기나!” 아내의 체력을 제가 잘 알잖아요. 절대로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아니거든요. 그런데요. 한 달이 넘어가도 끄떡 않는 거예요.
어느 날은 몸살이 너무 심해서 하루만 쉬라고 사정을 했지요. 그런데 단칼로 쳐버리는 거여요. 얼굴은 갈수록 환해지고, 몸은 날아다니는 겁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요. 내 모든 생각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런 모습이 계속되니 이젠 거꾸로 제가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저 기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저 힘은 도대체 무엇인가?’ ‘저렇게 변화시킨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이런 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 나는 세상, 아내는 하늘? 부부는 한 길로 가야 하는데, 이건 부부가 아니지. 그렇다면 어떡하지?’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이, 저는 부부는 절대 다른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이 신념처럼 되어 있었어요.
‘그렇다! 아내가 다시 내게 오든가, 아니면 내가 아내에게로 가든가! 둘 중에 하나다!’
그런데 내 쪽으로 다시 오라하기는 명분이 안서는 거예요. 솔직히 아내의 삶이 훨씬 바람직했거든요.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했거든요. 결론은 간단했지요.
‘그래. 가 보자! 내가 알아보고 결정을 하자!’ 정말 대단한 결단이고, 대단한 교만이었지요. 내가 하나님을 판단하겠다는 거였으니까요.
효자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장례 문제
이렇게 ‘쿨’하게 결론을 내리고 드디어 한마음교회로 향했습니다. 길도 멀고 힘들었지요. 말씀도 전혀 들리지 않고 예배시간에는 졸음만 왔지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교회 안에 학교 제자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그것도 다 말씀을 잘 전하는 쟁쟁한 사람들이었어요. 선생님의 체면 상 되돌아갈 수도 없고, 싫어도 안 들을 수 없고…….
정말 ‘살만한 세상’을 버리고 왜 내가 이런 생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자연히 화살은 아내에게 향했죠.
“예수님이 소경을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해?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하자. 그런데 보리떡 5개와 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여? 죽었다 다시 살아났어?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아내가 엄청 힘들었겠지요. 그런데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렇게 열 받으면서도 계속 따라 다녔다니까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의 목숨을 건 기도가 있었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말씀 보고, 기도하고 애썼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거예요. 그야말로 힘든 고행의 연속이었어요. 아내 몰래 혼자 울기도 했다니까요. 그런데요. 그 어떤 고통도 부부가 다른 길을 갈 수 없다는 강한 제 생각과, 아내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누르지 못했어요.
그러다 말씀에 걸려 큰 위기가 온 적이 있었지요. 마태복음에 8장에 보면, 예수님의 한 제자의 아버지가 죽잖아요. ‘예수님! 제가 잠깐 아버지 장사지내고 오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안 돼!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장사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 와.’하는 겁니다. 당연히 ‘그래! 마음 많이 아프지? 내가 기도할게. 잘 다녀와.’ 그래야 하잖아요?
그런데 가지 말라니 말이 됩니까? 단 며칠간만 갔다 오겠다는데… 평생 길러준 아버지 장례식인데……. 엄청 흥분했지요. 아내와 주위가 살벌해졌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넘어졌다 일어섰다, 울었다 웃었다 하다가 1999년 10월. 제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을 맞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교통사고였어요. 건널목을 건너는데 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아이를 쳤어요. 생사도 불분명하다는 소식을 삼척 산골짜기 관사에서 듣게 되었는데요. 캄캄한 밤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 삽당령을 넘다가 차에서 내려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하나님! 목숨만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하나님을 위하여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정신을 차려 다시 운전을 하는데 4가지 상황이 눈앞에 쫙 펼쳐지는 거예요.
첫째, 다시는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는 상황, 둘째, 목숨만 붙어 숨만 쉬며 살아갈 상황, 셋째, 평생 불구의 몸으로 지내야할 상황, 넷째, 찢어지고 깨어지고 엉망진창이 되는 상황… 더 이상의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큰 사고였거든요. 병원에 가까이 오는데요. 얼마나 절박한지 “아빠!”라는 말을 단 한번만 들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신없이 응급실 문을 열었는데, 아이가 “아빠!”하는 거예요. 그대로 아이의 손을 잡고 ‘하나님!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만 외쳤어요.
트럭 앞 유리가 다 깨어지고, 철판이 찌그러지는 강한 충격에 아이는 7미터나 날아가 아스팔트에 내동댕이 처져 의식을 잃었지요. 30분 후에 깨어난 아이는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어요. 기적이 일어났지요. 아니, 하나님께서 곱게 안아 내려 주셨어요. 7일 만에 퇴원했고, 아무 후유증도 없었습니다.
현장 검증 때, 경찰도 동네 목격자들도 도저히 상황 해석이 안 된다는 거예요.
정말 그렇게 마음이 낮아진 적이 없어요. ‘아!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없구나!’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너무나 고마운 거예요.
그 때, 하나님 앞에 결단을 했지요. 자식의 생사 앞에 내 가치관, 내 생각,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완전히 무너졌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낮아졌던 마음과 기쁨이 서서히 사라지는 거예요. 여전히 세상은 살만했고요. 무언가 늘 마음에 짐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다시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장사지내러 가지 말고 나를 따라오라니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수련회 후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속초에서 예배가 있었어요. 갑자기 너무 가고 싶어 속초로 향했지요. 이 고민을 놓고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요한계시록 3:20 말씀이 그대로 임했습니다.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지요.
내가 문을 열기만 하면, 예수님이 내게 들어와 나와 함께 살겠다는 거예요. 몸단장 잘하고, 좋은 옷 입고, 넥타이 매고 오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오라는 거예요. 오기만 하면 함께 한다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지금 이대로 문만 열면 되는구나! 바로 이런 사랑의 예수님이시구나!
그대로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지는데요, 감당이 안돼요. 그리고 ‘믿는 것과 아는 것’은 천지 차이라던 목사님의 말씀도 정확히 알아졌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시인하고, 부활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서 10장 9절의 말씀이 선명해지며, 말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오는 거예요.
아! 지금까지 내 믿음은 가짜였구나! 지식이고 신념이었구나! 그렇구나! 내가 주인이었구나! 부활도 지식이었구나! 입으로는 예수님이 주인이고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하였지만 내게 실제가 아니었구나! 그대로 통회가 되면서 그동안 막혔던 말씀들이 다 풀리는 거예요.
장사지내러 가지 말고 나를 따라오라 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그대로 부어졌습니다.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고, 부활하심으로 나의 진짜 주인이 되셨다는 이 사실, 내가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신 말씀이 실제가 되니까, 오래 동안의 고행의 시간도 한 순간에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큰 기쁨과 자유 함이 임하는데요, 아! ‘아내의 기쁨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아! 나도 드디어 아내와 같은 길을 가는구나!’
정말 감사만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라 깜깜한 어둠이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세상이 가장 살만한 곳이란 것도 그대로 선명해졌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난 직 후, 아버지 3주기 제사가 있었어요. 외지에 사는 친척들도 다 모이는 큰 제사였지요. 저는 형님에게 한 장의 편지를 남겼어요.
“우리는 교회로 갑니다. 아버지 영혼이 제삿날에 오신다면 저는 밤새도록 절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영혼은 천국에 계시고, 제사에는 귀신들이 모여오기 때문에 저는 절대 귀신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형님도 빨리 예수 믿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지요.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아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고, 숨을 거둘 때도 말씀에 아멘하며 웃으면서 돌아가셨거든요.
제삿날 저녁에 가족을 싣고 바로 교회로 향했지요. 친척들이 볼 때, 소문난 효자에서 한 순간에 불효자가 된 거지요. 그런데요. 앞으로의 일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나 염려가 조금도 없고 너무 기쁜 겁니다.
그 후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많은 일을 하게 하셨어요. 시간 날 때마다 선생님들께 복음을 전했고, 근무하는 학교마다 기독교 동아리나 특활반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교육 프로그램으로 도저히 안 되는 문제 학생들을 불러 복음으로 해결하기도 했고, 교사나 학부모 대상으로 한 각종 교육, 설명회 등에서도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어느 전통의 축구 명문 중학교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였는데요. 취임하고 한 달 쯤 지났을 때, 축구부를 위한 고사를 지낸다는 겁니다. 설득으로는 절대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지요.
“교장이 축구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고사는 절대 지낼 수 없다.”고요. 50년 동안 지내오던 고사를 없앤다니까 학부모, 동창회 임원들의 반발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제 결단은 단호했습니다.
고사를 없애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전년도 성적이 8개 팀 중에 5위였는데요. 그 해, 1년간의 리그전 결과 19승1무1패로 챔피언이 되었어요. 1무 1패는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한 경기였고요.
그리고 강원도 대회가 총5개 있는데요. 전체 대회 우승을 싹쓸이 했고 전국대회에서도 몇 십 년 만에 준우승을 했습니다.
이 기록은 물론 지금까지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깨어지지 않을 기록일거예요.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셨고, 귀신에게 절하던 그들에게 똑똑히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신 거지요.
저도 이제, 평생 몸담았던 교직 생활이 조금 남았어요. 동료들은 모이면 퇴임 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합니다. 그런데 제가 할 일은 단 한가지 밖에 없잖아요. 하나님께서 허락한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할 것입니다.
세상은 정말 살만하다고 말하던 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정말 자유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이 간증이 여러분들에게도 은혜와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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