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예수님이 왜 하나님이신가?”를 무척 고민했다. 그리고 그 답을 뜨거운 마음에서 찾으려고 많은 부흥회, 수련회에 참가했지만 곧 마음은 식곤 했다. 혹시 ‘내가 없는 하나님을 마음에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방언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제대로 된 방언을 하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언젠가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3일 동안 꺽꺽 울면서 금식기도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창조과학을 접했을 때도 예수님이 선명치 않았다. 결국 ‘33세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스라엘 청년 예수님이 왜 하나님일까?’ 하는 의문은 그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니야! 보지 않고 믿는 거잖아. 의심하지 마!’ 하며 의심들을 꾹꾹 눌렀다.
겉으로 봤을 때 나는 하나님을 잘 믿는 크리스천이었다. 고3까지 중고등부 찬양팀 리더에, 매일매일 큐티에, 신앙서적도 정말 열심히 읽었다.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마음이 드니까 ‘아! 드디어 순교신앙까지 이르렀구나!’ 하는 자부심도 생겼다.
그러다 신앙의 위기를 맞았다. 수능에서 최악의 성적이 나왔다. 하나님이 내 뒤통수를 “옛다, 맞아라.” 하며 탕 때리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공부도 최선을 다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며 내 마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대학에 진학한 뒤 춘천 한마음교회에 와서 내 신앙의 문제점이 정확히 드러났다. 사도행전 17장 31절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말씀은 충격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증거’가 아닌 내 기준의 감격과 체험 등 ‘사람의 증거’로 믿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 기록된 것처럼 약속대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 약속은 바로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예언이었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그 예언을 이루셨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임이 정확해졌다.
부활은 그냥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 정도가 아니었다. 전능자께서 이 지구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사건이고 인류역사 속에 발도장을 찍고 가신 증거였다.
난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였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 창조주가 필요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예수님의 손은 잡아끌면서 “왜 따라와 주지 않느냐”고 할퀴고 발악하는 마귀 같은 자였다. 나는 그냥 엎어져 일어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로마서 14장 9절 말씀으로 “내가 너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죽었다. 내가 부활했다. 내가 부활했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 이제는, 이제는 내가 너의 참 하나님이 되고 너의 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 들어가도 되겠느냐?”며 다시 물어보시는데, 나는 온 마음을 찢으면서 내가 주인 된 그 악랄한 죄를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셨다. 나는 드디어 모든 의문에 정답을 얻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의심도, 흔들림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 주신 믿을 만한 증거! 너무도 기쁜 소식! 너무도 기쁜 예언의 성취!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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