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쯤부터 좁은 곳, 어두운 곳에 가면 답답함을 넘어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전철 안에서 초조와 불안으로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으로 주저앉은 적도 있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홀로 갇혀 있다는 불안감에 거의 질식 상태가 되어 함께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다. 생각만 해도 숨을 쉬기가 힘들어져 지하에는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은 곧 ‘난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수시로 밀려오는 공포에 얼어버리곤 했다.
언젠가 처가에 갔을 때, 노래방에 가서 식은땀을 흘리며 밀려오는 공포와 싸우며 의연한 척 버티고 있는 나를 보고 처가 식구들은 할 말을 잃고 성격이 참 유별나다고 했다.
병원에서 심각한 ‘공황장애의 폐쇄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고 마음의 안정을 갖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신경안정제를 먹으면 좁은 공간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이 잠시 나아지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약을 먹는 회수는 점점 더 늘어갔다.
그 사이에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기로 하고 약도 먹었고 칼로 손목도 그었다.
이렇게 죽음의 공포에 눌려 폐인이 다 되어 갈 즈음, 한마음교회를 다니고 있던 아내의 권유로 여름수련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은 물론, 성도들끼리 교제도 부활로 시작하여 부활로 끝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부활뿐이었다. 그러나 왠지 ‘요나의 표적’, 부활 밖에는 없다며 무한 반복하는 말씀들이 듣기 싫다거나 짜증이 나지 않았다.
수련회 셋째 날, 나도 그들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밤늦게 텅 빈 예배당에 혼자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죽음의 공포로 영육 간에 피폐해진 상태였지만 죽기 전에 제대로 한 번 믿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 기도하는데 수련회 동안 수없이 들었던 부활의 말씀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그러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야 믿었다’는 요한복음 말씀이 마음에 꽂혔다. ‘모두가 분명히 죽은 걸 봤는데 다시 살아나셨다?’ 그 순간 내 입에서는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주여! 당신은 저의 영원한 주인이십니다.” 그동안 마음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주인된 삶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성령께서 역사해 주셨다.
나는 그동안 증거로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니까 그런 것으로 머리에 입력해놓고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 우리의 주인이 되어 주시려고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 우리에게 죽음을 뛰어넘은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신 예수님, 그 큰 사랑의 감격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때 손에 못 자국이 난 주님의 모습이 내 마음에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그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고백을 했다.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한 없이 나왔다.
그 후 치료방법이 없다고 했던 공포의 공황장애가, 평생을 가지고 살아야할 고혈압이 놀랍게도 치유되었다. 부활의 능력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은 나는 날마다 감사와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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