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처음 믿고 기도원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원장은 사도행전 8장 14∼17절 말씀으로 안수를 받아야 성령을 받는다고 했다. 또 방언은 성령님이 임하신 증거이고 방언을 못 하면 구원이 없다고 했다. 이렇듯 성령론이 올바로 정립되지 않으면 특별한 안수나 기도를 통하여 받으려 하거나 성령을 받기 위해 다른 노력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는가? 사도행전 2장 38절은 정확하게 선포한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주인으로 믿을 때’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엔 예수님을 믿고 즉시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 방법에 관한 오해가 생기며 한국교회에도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왜 성령을 즉시 받지 못했는가? 이 문제의 해결은 신앙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첫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경우이다. 이들은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았음에도 사도들이 안수했을 때 성령을 받았다(행 8:14∼17).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서로 적대시했고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때, 즉시 성령이 임했다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고,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직접 내려가 안수하고 성령님이 임함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인에게 점진적으로 임함을 보여주신 일회적(一回的)인 사건이었다.
둘째, 이방인 고넬료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경우이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이었을 정도로 적대적이었다(행 10:28). 따라서 유대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통해서 이방인에게로 갈 것을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행 10:10∼16).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방언을 주셨다. 이 사건을 근거로 혹자는 성령이 임했다는 증거가 방언이고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이 임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방언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외국어 방언(foreign language)이며, 성령이 임했음을 알려주는 표적(sign)이었다. 사도들이 이방인에게도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줄 수 있었던 것은(행 10:47,48) 이 표적을 통하여 성령님이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였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언은 은사 중 하나일 뿐,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롬 10:9,10).
셋째, 에베소 사람들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경우이다. 에베소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믿음 또한 없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믿은 그들에게 안수할 때 비로소 성령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행 19:1∼7). 그래서 많은 사람은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안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주인으로 믿는 것이 성령을 받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신다(행 2:38). 사도들의 안수는 일회적 사건이지, 안수가 성령을 받기 위한 절대적 방법은 결코 아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셨지만, 이제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신다. 성령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내신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결코 사역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모든 사역의 주체이시며 우리가 갈망하는 부흥의 주체이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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