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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캐나다 벨빌에서 김보람입니다. 저는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하든지 저만의 기준대로 살았던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제 기준대로 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기야 병까생겼는데요. 그랬던 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대로 살며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된 간증을 나누려고 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음악장히 아했는데요. 하루는 바이올린이 우고 은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 한 수입의 배정도 되는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어요.  부모님께서는 어쩔 수 이 바이올린을 사주셨는데요. 하다 보니까 어깨랑 이 너~무 아픈 거예요. 그래서 그만 어요. 그런데 이번엔 플룻 기더라고요. 부모님께 또 악기를 사달라고 라서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이번엔 리가 너~무 아픈거예요. 그래서 그만 뒀어요. 그런데 얼마 또 피아노에 확 꽂혀버려서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이번엔 선생님이 가르치는 방식이 너무 마음에 안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 뒀어요. 이렇게 저는 형편이나 부모님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부모니까 아들인 나에게 이렇게 해주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제 기준은 다른 사람들에게 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적용되었는데요. 제가 목회자 자녀이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목회자 자녀는 모든 일에 모범이 되어야 했어요. 정한 , 는 얼굴, 예의바른 인사는 기본이었고요. 수요예배 새벽예배 어린이예배, 소년예배, 가대, , 성경암송대회, 워십댄스팀, 양팀 등등 교회에서 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참여했어요. 들고 마음은 지쳐갔지만 목회자 자녀에게 이 정도는 당연한 거죠~

에서는 부모님 말씀 는 아들, 한 오빠로 보이는 것도 요했어요. 하루는 집에서 동생과 한바탕 싸웠는데요. 동생이 교회에 와서도 계속해서 얼굴을 그리고 는 거예요. 저는 동생을 불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너 얼굴이 그래? 교회에서까지 그러면 되겠어?” 하면서 어요. 그런데 자기 이 확 리는 거예요. 바로 저는 웃는 얼굴로 정 관리를 하며누구 . 인상 하고는 찬양을 얼거리며 그 상황을 빠져나왔어요.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교회 어르신들의 여움을 받으며 자랐고시 김목사님 아들답네~” 라는 찬을 들을 때면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VMunH8eZq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