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16세에 결혼해 6·25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22세에 홀로 되어 5살 된 나와 한 살 여동생을 기르신 고통의 삶을 사셨다. 외갓집 어른들은 ‘엄마 불쌍하니 꼭 효도해야 한다’ ‘장가가면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20대에 몇 아가씨와 만났지만 그때마다 어머니의 한마디에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31살 노총각 때 겨우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어머니 방문 앞에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길 다하여라’로 시작되는 송강의 효행시 액자 하나를 걸고 실제로 그렇게 노력했다. 그러나 신혼의 꿈도 잠깐, 어머니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울하게 누워 식사도 잘 하지 않으시며 늘 속상하다고 하셨다. 왜 어머니를 속상하게 했느냐며 아내를 폭행 했고, 무조건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어머니께 빌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마누라 치마폭이 아닌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 맞춤형 아들이 되어갔다. 집안의 모든 일은 어머니 생각대로였고, 시키시는 일은 한마디도 토를 달 수 없었다. 그 독선과 아집 앞에 내 인격과 자존심은 함몰되었고, 정신까지 어머니 손에 잡혀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은 상처가 되어 분노와 원망으로 쌓여갔다.
결국 오십 중반쯤에 나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며 죽음까지 생각했다. 설상가상 명문대 경영학을 전공한 아들이 취업을 못하고 방황했다. 늘 최종 시험인 면접에서 두려움으로 답변을 못해 탈락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하듯 아버지도 나에게 그랬다’고 하는데, 아들의 눈빛은 분노에 차 있었다. ‘아, 이것이 악습으로 대물림되는 가정의 저주구나’ 하는 생각에 내적 치유에 관한 책을 읽고 많은 분을 찾아다니며 상담도 했다. 모두 다 어머니를 용서하라고 했지만 마음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오직 주만이’ 간증 영상을 보았다. 인생 벼랑에 섰던 사람들의 변화된 이야기를 듣고 ‘무엇이 저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하는 충격에 춘천 한마음교회를 찾았다. 매주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죄가 무엇인가?’ 묻기도 하고, ‘네가 주인이잖아!’ 따지듯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믿어지지 않으니 마음만 답답했다.
그러다 몇 달 동안의 말씀을 차근차근 되짚어보았다. ‘예수님의 부활을 내 생각이나 느낌으로 믿으려 하지 말고 증거를 찾아 믿으라’는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폈는데 사도행전에서 부활의 증인들 바로 베드로, 스데반, 바울의 삶이었다. 그들은 정말 부인할 수 없는 부활의 증인이었다. 그랬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니 그동안 내가 주인 되어 살아왔던 삶이 그대로 보였다. 죄는 내가 지었고, 악을 행한 자도 나였고, 지옥에 떨어질 자도 나였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보이는 순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왔다. 한참 울었다. 그리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아온 죄를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그러자 내 마음속 깊이 박혀 있던 상처와 원망의 단단한 얼음덩어리가 녹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가 임하자 어머니의 삶이 다시 보이며 원망이 사랑으로 변했다. 이제는 술도, 제사도 끊고 하나님께 기도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의 마음 문도 활짝 열리고 있다. 남은 삶, 바울처럼 주님과 동행하며 오직 부활의 증인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원문기사링크 http://bit.ly/2dyUYH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