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때 홍역을 심하게 앓고 난 후 청각장애가 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때는 보청기 없이 거의 듣지 못한 채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보니 출석을 부를 때도 받아쓰기 할 때도 항상 긴장해야 했다. 친구들과의 대화도 거의 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로 혼자 TV를 보며 지냈다. 듣는 것은 어려웠지만 화면에 나오는 장면들을 눈으로 보고 대충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어 보청기를 했는데 친구들에게 너무 창피했다. 소리는 잘 들렸지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내 마음은 점점 위축되어 갔다. 간호사가 꿈이었지만 환자와 소통이 어려울 것 같아 결국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에 진학했다. 꿈을 포기 한 것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되지 않는 것도 모두 청각장애 때문이라 좌절만 깊어갔다. 그러다 친구 소개로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갔다.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 내 모습 이대로 받으셨네.” 처음 들은 찬양은 내 마음을 울렸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나를 위해 천지 만물을 만드셨다는 사실에 눈물만 나왔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셨다는 말씀에 감동되어 나도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친구들은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는데 함께 할 수 없었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늘 나 혼자였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녔지만 역시 마찬가지였고 결혼 후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남편은 늘 답답해했고, 자녀들의 짜증은 더해만 갔다. 학교 어머니들 모임에 가도 말 한마디 못하고 밥만 먹고 오기 일쑤였다. 이렇게 어느 누구와도 관계가 잘 되지 않다보니 마음은 늘 외롭고 삶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 가족들이 다니는 한마음교회에 갔다. 처음 들은 찬양과 말씀도 은혜였고, 점심 식사 후에 삼삼오오 모여 말씀으로 기쁘게 교제를 하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마치 예수님이 말씀을 하실 때 함께 앉아 듣는 모습만 같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조금씩 마음이 열린 나는 말씀을 더 알고 싶어 한마음 교재 ‘부활’을 읽고 또 읽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질문은 나를 고민하게 했다.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만 알고 있었지,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관심도 없었던 내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드디어 부활을 확증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인 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는 것임도 명확해졌다. 나는 즉시 내가 주인 되어 살아 온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였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신 그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의 눈물만 나왔다.
요한복음 9장의 맹인이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처럼, 내 귀가 들리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감사뿐이었다. 나의 부족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 때부터 날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내가 내 삶의 주인 되어 열등감에 눌려 살던 나에게 새 생명을 주고 자유를 주신 예수님이 너무 감사하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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