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에 맞선을 보고 2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광주에서 낯선 춘천까지 오게 되어 외롭다고 생각될 무렵, 개척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허리통증과 불면증을 치료받았다. 자라면서 사랑받지 못했던 내가 십자가 사랑에 얼마나 감격했던지 밥을 하면서도 울고 청소를 하면서도 울고 심지어 사람이 없는 골목길을 다닐 때도 울었다.
아들이 6세쯤 되었을 때 사경회가 있었는데 은혜를 받은 우리 부부는 ‘예수님의 재림도 가까워졌는데 둘째를 낳으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겠냐’며 의논 끝에 단산수술을 결정했다. 아들은 고등학교 때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군 생활 중 여러 가지 영적체험을 하면서 믿음이 많이 성장했다.
아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교수님의 권유로 일본유학을 갔다. 1년쯤 지났을 때 새벽기도를 하고 집에 왔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은 “예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해요. 나도 예수님을 정말 사랑해요”라면서 울었다. 아들은 기도하다 예수님 사랑에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전화한 것이다. ‘아들이 지금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1주일 후 아들의 선배라는 사람이 “어머니 놀라지 마십시오. 태영이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들은 새벽기도에 가기 위해 자전거로 교회 앞 건널목을 건너다 12t 화물차에 치여 병원으로 가던 중 사망했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차를 몰고 미친 듯이 통곡하며 다녔고, 응답 없는 전화를 수없이 걸어 보았다.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유골을 나는 차마 볼 수 없었고 아들의 죽음 앞에서 내 믿음은 통째로 흔들렸다. 남편에게 짜증과 분을 냈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 말씀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 있는 지인을 통해 한마음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듣게 되었다. 몇 개의 간증을 듣는 가운데 ‘부활’이란 단어가 내 귀에 강력하게 들어왔다. 순간 내가 알고 있는 부활과 뭔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한마음교회 새벽기도에 나갔는데 목사님은 늘 부활을 말씀하셨다. 내가 알고 있는 부활과 목사님이 말씀하는 부활이 뭐가 다를까 생각하며 요한복음 21장을 읽게 되었다. 14절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에서 숫자에 눈이 멈췄다.
‘만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단 한 번만 나타나셨다면 어땠을까? 내가 헛것을 보았나? 환상을 보았나’하며 오해할 수 있겠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수차례 반복적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도 듣고, 음식도 먹고, 말씀도 같이 나눈 것이다. 지식에 머물렀던 부활이 나에게 실제가 되었다. 그 즉시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다. 그러자 내 안에 있던 모든 근심과 염려가 떠났고 새로운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오랫동안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감격했지만 정작 아들의 죽음 앞에서 사랑도 사라지고 천국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가 되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도 영원한 처소인 천국도 확실해졌다. 사랑하는 아들을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함께할 것을 생각하니 아픔은 사라지고 부활하셔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신 예수님께 감사할 뿐이다. 나처럼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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