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나와 누나는 만성신부전이었던 어머니와 셋이 힘들게 살았다. 어머니는 신장이 나빠 늘 숨이 차고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셨다. 그러나 나는 극빈자라 학비가 면제되는 게 너무 창피했고, 아픈 어머니와 우리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가득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의 눈 내리던 겨울 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 중환자실로 실려 간 어머니는 작별인사 한마디 없이 5일 만에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도저히 믿을수도, 받아들일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전하며 섬겼고 하루 3번씩 투석을 하면서도 늘 감사하며 사셨다. 그런데 살려달라며 울부짖던 우리 남매의 기도를 뿌리치고 어머니를 죽게 내버려 둔 하나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고아가 된 나와 누나는 이모 집에 들어갔다.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은 14세이었던 내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더구나 부모님이 아닌 누군가와 산다는 건 정말 힘들었다. 싫어도 좋은 척하며 목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적 갈등은 점점 깊어져 친구 집과 밖으로 겉돌았다. 걱정하시는 두 분은 생각지도 않고 며칠간 행방을 감췄고,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는 몰래 집에 들어 가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다가 필요한 물건만 챙겨 나오곤 했다. 우리 가족에게 이런 고통을 주고 나의 삶을 방해하는 하나님인데 더 이상 교회에도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지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도대체 본적도 없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난다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만나고 싶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예배를 드릴 때였다. 목사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증거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하셨다. 그 말은 더욱 나를 실망시켰다. 다 아는 그 사실이 왜 모든 사람이 믿을만한 증거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저런 황당한 소리 말고 방언을 하거나 환상이라도 보면 믿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만약 기적을 통해 병이 나아 예수님을 믿었다 하자. 그런데 다시 병이 생기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그런 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그때였다. 3년 반 동안 예수님 곁에서 많은 기적을 본 제자들이 예수님이 붙잡히니까 도망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어서 죽음이 두려워 도망쳤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한 모습은 더욱 나를 놀라게 했다. 3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 형을 미쳤다고 했던 동생 야고보, 믿는 자들을 직접 죽이고 핍박했던 바울,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전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었다. 부활하신 이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던 나, 내게 무엇을 해줬느냐고 따지던 나, 나를 왜 이런 힘든 삶속으로 던져 버렸느냐고 대들던 나,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산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였던 것이다. 그대로 회개할 수밖에 없었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물질적으로는 늘 부족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쁘고 감사만 나온다. 환경을 원망하며 목적 없이 살았던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이모와 이모부가 베풀어 주신 삶의 길,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삶의 길.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그 길을 기쁨으로 달려갈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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