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우리 교회 목사님의 사역 초기부터 함께 동역해 나는 어려서부터 학창시절까지 대부분의 삶이 교회와 연관돼 있었다. 고교 시절 친구에게 담배를 배워 멋지게 피우며 길을 걷는데 저 멀리 목사님이 보여 깜짝 놀라 정신없이 도망치기도 했다. 훗날 목사님이 가끔 “성호야, 너 그때 나보고 왜 도망갔냐”고 묻곤 했다. 무늬뿐인 신앙이었다.
교회는 다녔지만 결혼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았다. 직장에서 술자리는 일주일에 3∼4일 이어졌고, 노래방에서 당구장까지 귀가시간은 자꾸 늦어졌다. 아내는 제발 저녁 좀 같이 먹자고 했지만 나는 “이런 게 사회생활을 잘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직장선배가 “야! 너 교회 다니는 거 맞아. 교회 다닌다는 놈이 나보다 술도 더 먹고 담배도 그렇게 피우냐”고 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그래서 내가 형한테 교회 나가라고 했어. 왜 그래, 내가 술자리에서 종교 정치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 왜 기분 좋게 술 먹는 사람 열 받게 만드는데”라며 술판을 깨고 나왔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마음이 정말 안 좋았다.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 모습을 보니 도저히 나갈 수 없었다. 이런 나를 아내는 권면도 하고 끝없이 기도했지만, 누가 봐도 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다.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모두 집에 와서 풀었다. 집에 들어오면 소파에 벌렁 누워 아내한테 모든 잔심부름을 다 시켰다. 아내를 따라 교회는 갔지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이런 나와 달리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방송에 출연해 신앙 간증을 하는 일이 계속 됐다. 온 가족이 간증을 준비하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오히려 나는 화를 내며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어느 날 교회에서 작은교회 일꾼 형이 꼭 간증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니, 술 쳐 먹는 놈이 어떻게 간증을 할 수 있어요.” 크게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자기 모습 보지 말고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이 한마디가 내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저히 나만을 바라보며 꼼짝할 수 없었던 내가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요한복음을 읽다가 문이 닫혔는데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장면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예수님이 신령하고 썩지 않을 몸, 영원히 사는 부활체로 마치 내 곁에 서 계시는 것 같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정확히 인지하면서 ‘아, 진짜구나.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구나. 이분이 성경대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창조주 하나님, 바로 나의 주인이시구나’하는 탄성이 나왔다. 바로 내 모습이 보였다. 양심에 눌려 끝까지 버티며 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무시하고 내가 주인 되어 내 맘대로 산 자였다. 시간과 장소만 달랐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가 바로 나였다.
눈물로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다.
그동안 술 담배로 교회 다닌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살았지만 예수님이 주인이 되니 담배의 유혹이 끊어졌고 술도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친구들을 만나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다.
모든 것이 감사뿐이다. 아웃사이더처럼 목사님과 지체들을 피해서 예배당 구석에 앉아 있던 내가 지금은 형제들과 중앙 자리에서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바울처럼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상 주심을 바라보며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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