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으로 열여섯살 때부터 혼자 살았다. 소식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부모를 생각하며 혼자 무서움과 외로움에 울며 밤을 지새웠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학비가 없어 학업을 접고 바로 직장을 잡았다. 그러나 17살에 뛰어든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시끄러운 기계소리에 늦은 밤까지 종일 서서 일하고 지쳐 텅빈 방에 쓰러질 때는 눈물만 나왔다. ‘아, 나는 혼자구나. 아무도 없구나!’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늘 우울했고 숨을 쉬는 자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술과 담배로 위안을 삼았다. 어느 날 호프집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나의 아픔을 잘 이해해 주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외롭고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보상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스물다섯살에 결혼했다. 우리는 매일 꿈꾸는 듯 행복했고 아들도 낳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남편은 회사일이 바쁘다며 집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점점 그 횟수는 늘어났고, 연락 없이 일주일 동안 안 들어오기도 했다. 신경은 점점 예민해졌고 싸움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나와 아이를 남겨두고 취업비자를 내서 일본으로 갔고 결국 우리는 이혼했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일본에서 아이들까지 낳았던 것이다. ‘부모에 이어 남편까지 나를 버렸구나!’ 또 다시 힘들고 외로움의 공포가 몰려 왔고 빨리 인생을 끝내고만 싶었다. ‘어떻게 하면 편안히 죽을 수 있을까’ ‘저기에 목을 맬까. 아님 달리는 차에 뛰어들까’ 등등의 생각이 나를 덮쳤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교회에 나가 예배와 교회봉사에 열심히 참여했지만, 우울과 자살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기독교방송에서 동성애자였던 자매가 부끄러운 자신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오픈하는 간증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엇이 저 자매를 저리도 담대하고 자유하게 해 주었는지, 어둡던 삶이 어찌 저렇듯 밝게 변하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유튜브에서 한마음교회 성도들의 간증들을 듣기 시작했다. 저곳에 가면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과 성도들의 간증을 들을 때마다 저들과 나의 복음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너무 답답했다. 부활의 역사적 사실이 실제가 되고 선명해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나사로가 생각났다. ‘나사로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예수님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나사로와 예수님의 차이가 뭐지.’ 갑자기 수없이 들었던 말씀들이 온통 뒤죽박죽이 됐다. 그러다가 ‘나사로도, 예수님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건 맞는데 나사로가 성경대로 왔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며 숨이 턱 막히고 온몸에 진동이 일어났다. ‘아, 성경대로!!’ 이사야 9장6절의 예언처럼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셔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것이 너무 선명해졌다. 이 ‘성경대로’라는 말씀이 실제가 되자 사도행전의 모든 말씀들이 하나로 연결됐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도마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됐다.
내 죄가 선명히 보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 그것이 바로 나의 죄였다. ‘아!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구나!’ 가슴이 찢어질 듯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나의 참 주인으로 모셨다. 지금 나는 친정어머니와 새아버지가 계신 집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 땅에서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오늘도 가족과 함께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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