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입고 쓰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이 어렵거나 불편한 것을 모르고 자랐다.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온갖 짜증을 내고 남을 업신여기는 오만방자한 성격이었다. 대학시절에는 MT나 동아리 모임, 미팅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함께 하는 잠자리와 샤워실이 지저분해 찜찜했고, 여러 명이 똑같은 티셔츠를 입는 자체가 너무 촌스럽게 느껴졌다.
대학도 간판을 따려고 간 것이지, 미래의 꿈도 공부도 관심이 없었다. 시간과 돈, 하고 싶은 일에 제약을 받지 않으니 딱히 인생의 목표나 직업도 필요 없었다. 결혼도 조건을 맞추고 고민하는 것이 싫어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사람과 했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내 맘 같지 않았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주말엔 아이들에게도 관심 없이 잠만 잤다. 그런 남편이 꼴도 보기 싫어 아이들 영어교육을 핑계로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사촌언니를 따라 처음 교회에 갔고 성경공부도 했다. 목사님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남들은 ‘구원자다, 그리스도다, 주님이다.’ 라고 대답하는데 나는 도대체 왜 물어보는지 짜증만 났다. 그래서 한참 생각하다가 “오빠”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면서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오빠죠.” 순간 목사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 후 나는 은사집회에서 환상을 보고 방언과 예언도 받았다. 나 자신이 성화된 것 같았고 천국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그리고 몇 년 후 아이들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한국에 오니 엄마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고,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그 즈음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언니의 소개로 몇 편의 간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신앙은 나의 신앙과 너무 달랐다.
저토록 어려운 환경에 어떻게 기쁠 수가 있는 지, 어떻게 큰 확신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마음교회에 찾아 갔다. 하지만 말씀은 잘 들리지 않았다. ‘부활.’ ‘회개하고 주인으로 믿으라.’는 말씀은 머리로는 알겠는데 도무지 마음에는 닿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진짜 믿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어느 새벽기도 때, 누가복음 24장의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나를 만져봐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다’하시는데 마치 내가 그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과 시편이 나에 대해 기록이라 하시며 죽고 살아날 것이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아! 이거였구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내 죄가 선명하게 보였다.
물질도, 시간도, 내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았고, 내 위에 아무도 없다며 사람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철저히 나밖에 모르던 자.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왕 노릇하며 하나님까지도 무시한 나는 지옥갈 수밖에 없는 죄인 중에 죄인이었다.
나를 꼭 품으시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 사랑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 사랑 앞에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다. 그 때, 너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며 도장을 꽝 찍으시는 것 같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나는 바로 부활의 증인이다. 오늘도 영원한 주인이신 예수님만을 높이며 부활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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