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돈 명예도 아닌 강한 나 자신이라고 믿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당연히 나약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삶의 큰 위기가 몇 번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찾거나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누나의 간곡한 권유로 33세에 교회 땅을 처음 밟았다. 이상한 것은 예배 시간에 아무 감정 없이 앉아 찬양을 듣는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 난생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만약 ‘부활이 사실이면 하나님이 살아계실 수 있겠구나’라고 문득 생각했다.
부활이 내 가치관을 완전히 뒤흔들기 시작했다. 딱 한 달만 부활에 대해 더 알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부활은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는데 왜 믿으라고 하는가’라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만 더 교회에 가보고 안 되면 집어치우겠다고 다짐하며 누나를 따라 나섰다.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많은 말씀이 쏟아졌지만 역시 나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활이 계속 생각났다. 밥 먹다가도 부활, TV를 보다가도 부활, 술 마시면서도 부활, 게임을 하다가도 부활, 담배를 피울 때도 부활이 자꾸 생각났다. 나중에는 부활의 ‘부’자만 들어도 경기가 날 정도였다.
2006년 4월 4일 새벽 2시. 화장실에서 천지개벽 할 사건이 일어났다. 늦은 시간에 가게 문을 닫고 정리하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화장실에 가려는데 또 부활이 생각났다. 그래서 어떤 형제가 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의 고통을 의학적으로 다룬 책의 복사물을 들고 화장실에서 대수롭지 않게 읽어 내려갔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가슴이 너무 떨려왔다. 그 순간 부활을 증거 했던 제자들이 생각나면서 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제자들이 정말 부활을 봤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구나.”
이렇게 부활이 확증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셨구나. 십자가에서 죽은 젊은 청년이 하나님이셨구나. 내가 이분을 믿지 않고 살았구나.’ 하나님은 나 같은 자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다. 내가 주인 되어 살아 온 죄를 깨닫고 그 예수님을 만난 순간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내 죄를 회개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더 큰 기쁨과 자유를 경험하게 됐다는 것이다. 인생과 생명의 주인인 예수님께 다 맡길 수 있는 참 자유함이었다.
그 후 내 삶은 변하기 시작했다. 입버릇처럼 하던 욕이 떠나고 술과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해 부활을 전하다 심한 욕을 들으면서도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복음을 증거했다. 가게에 오는 손님은 물론 하루도 빠짐없이 대학 캠퍼스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이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의 증인들이 갔던 그 길을 나도 주님 오시는 날까지 걸어갈 것이다. 부활의 능력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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