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해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이분이 복음이다.(롬 1:2∼4)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해 만왕의 왕으로 계신 것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은 지적 동의나 일방적인 신념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와 나와 더불어 사시며(계 3:20), 나는 그분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가 실제가 될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변한다.
가족들과 함께 농장에 간 적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염소가 무서울 만도 한데 어린 손자가 염소에 다가가 뿔을 만지는 것이다. 그래서 염소가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호랑이가 염소보다 세서 호랑이가 이긴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때 손자는 호랑이 인형을 손에 들고 있었다. 자기 손에 쥐고 있는 호랑이가 더 세기 때문에 염소가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손자에게 호랑이 인형은 인형이 아니라 실제 호랑이였던 것이다. 손자를 보면서 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에서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은 말씀 그대로 믿는 믿음, 그 약속의 말씀이 실제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나는 요즘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회개의 역사를 보면서 실제로 지금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분 때문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죄사함의 원리를 교리적으로만 알아 반복적으로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을 합리화해 죄에 대해 무감각했던 사람들을 깨우고,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판단 정죄를 일삼던 사람들을 주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있다.
깨졌던 부부관계가 회복되고, 방탕했던 삶에서 돌이키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70년 넘는 세월동안 죄인 줄 모르고 무감각하게 살며 자신과 가족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사람들이 일평생 처음으로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 앞에 눈물로 회개하며 굴복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목회자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다. 그 가족들은 “이것은 우리 가정에 있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이 회개와 굴복의 역사는 한 사람으로 시작돼 도미노처럼 소리없이 번져 온 교회의 기쁨이 되고 또 다른 사람들의 회개를 이끌고 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분명하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 어떻게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무시하고 죄를 지을 수 있겠는가. 내 안에 살아계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동시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분이 내 안에 살아계시는데, 세상 무엇이 두렵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 세상이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내가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됐다는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동하시는 주님, 나를 이끄시는 주님이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이다.(살전 5:10)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being)뿐만 아니라 이분이 내 안에 사신다는 것(living)이 분명할 때 죄와 죽음과 마귀를 이기며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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