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성령을 체험하며 방언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중고등학생 때는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집회나 유명한 집회를 찾아다니며 은혜를 받곤 했다. 그렇게 은혜를 받고 오면 내 신앙도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20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은혜를 받으러 다녔는데 그 때마다 성령의 은사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됐다. 방언과 통변, 예언과 환상, 치유 등 성령의 신비한 은사를 경험하면서 더욱 더 열정을 갖게 됐다. 금가루가 떨어지고 금니가 생기는 집회도 다니고, 세계적인 선지자들이 한국에 왔다 하면 무조건 찾아가서 은혜를 받곤 했다.
이런 과정에 나는 성령의 은사가 일어나는 것이 사도행전의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곳에 가면 너무 신기했고, 직접 예언을 받을 땐 더욱 좋았다. 그러나 이런 은혜들은 그 때 뿐, 나를 정말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자연히 더 세고 더 강한 집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십자가 사랑에 큰 은혜를 받았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았다는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너무나 기뻤다. 그 때부터 성령의 은사들보다 오히려 십자가에 대한 책들만 열심히 읽었고, 학교에서는 ‘이명렬은 십자가’로 통할 정도로 열심히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 얼마 동안 죄에 대해 자유를 누리며 기쁘게 살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과 죄의 유혹에 무너지며 한계가 왔다. 뜨거웠던 마음은 점점 식어가고, 무너진 마음은 더욱 갈급해졌다.
고민이 시작됐다. ‘내게 오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나는 항상 목이 마를까.’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갈급하고, 만족은 채워지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런 갈급함을 뜨거운 신앙생활과 은혜들로 덮으려고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힘들어져 갔다.
그러다 춘천한마음교회를 알게 됐다. 목사님께 부활을 들었는데 왜 부활을 강조하는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립한 복음에 부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몰랐다. 간절함으로 성령님께 의뢰하던 어느 날 부활의 말씀이 선명히 비춰졌다.
부활로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이 비춰지니, 내가 주인 되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어야 한다는 복음이 한 번에 쫙 비춰졌다. 전능자 하나님께서 오셨다 가시면서 이 세상에 가장 큰 사건인 부활을 주고 가셨던 것이다. 그동안 믿음의 반석이 부활이 아니니 항상 흔들리며 갈급할 수밖에 없었고 부활의 증거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고 그냥 믿으려고 했으니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주를 위해 산다고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 열정이었고, 내 의였고, 내 만족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도 갈급한 심령으로 헤맨 이유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마음에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드디어 하나님 앞에 내가 주인 되었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했다.
그 후 내 안에 모든 갈급함이 완전히 해결되었다. 전에는 십자가와 나의 뜨거움만 전달하는 자였는데 이제는 정확히 부활의 증거로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됐다. 부활행전인 사도행전 1장에 부활을 전할 사람을 세운 맛디아의 자리가 바로 나의 자리가 된 것이다. 앞으로도 땅 끝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사명자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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