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선생님께서 비에 대한 시를 소개할 때 나는 “이 비가 소말리아로 다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는 밥을 못 먹어 굶어죽는 사람이 많으니까 물배라도 채워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교실을 한 바탕 웃음바다로 만들 정도로 나는 참 엉뚱한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좋은 작품을 쓰려고 항상 머릿속으로 작품 구상을 했고 남들이 쓰지 않는 어휘를 쓰며 엉뚱한 말들을 하곤 했다.
이렇게 학창시절을 보내다 시나리오 대회에 나갔다. 기대가 컸지만 결국 탈락했다. 그때 국어선생님이 “좋은 글을 쓰려면 다양한 세상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언어를 찾다가 러시아어학과로 진학했다. 여름방학 아르바이트하던 업체의 사장님 권유로 한마음교회 대학생수련회에 참가했다. 수련회기간 동안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정말 4대 성인 중 예수님만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러나 부활 사실이 마음으로 믿어지지 않고 의심만 들었다.
스물세살 때 러시아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유럽이라는 새롭고 넓은 세상에서 정신이 없이 지내다 1년 만에 돌아와 한마음교회에 다시 갔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은 답답했다. 목사님이 설교를 통해 세상은 배설물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 말에 도저히 ‘아멘’할 수 없었다. 내가 본 세상은 반짝이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오색찬란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갑자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병원에 도착했다. 바로 그때 작은아버지가 우리 모녀를 보자마자 “형수님! 형님이 갔어요”라고 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시신을 확인하고자 안치실로 갔다. 병원 직원이 긴 사물함 같은 것을 당기는데 그 안에 아버지가 계셨다.
도저히 믿을 수도 실감도 나지 않았다. 이럴 수 없었다. 화장터에서 아버지가 한 줌의 재가 돼 나오는 걸 보고 나는 겨우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 후 심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교회 언니가 신앙훈련을 위해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오라고 했다. 지체들이 나를 위해 늘 기도해주니 점점 슬픔도 사라지고 어느 순간 가위 눌림과 악몽도 사라졌다. 하지만 해결받지 못한 것이 있었다. ‘왜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할 정도로 빨리 데려가셨나’ 하는 원망의 마음이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2장 22절 말씀을 찾아주시며, 제자들이 3년 반 동안 함께 했음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다 도망갔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다. 정말 성경에는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본 순간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부활만 전하다가 다 순교했다. 이것이 딱 보이는데,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 실제인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확실한 실제임이 선명해졌다.
‘아! 이 분이 나를 지으신 나의 주인이시구나.’ 딱 비춰지니 요한복음 16장 9절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회개할 죄라는 말씀 앞에 그대로 굴복됐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나의 주인 되신 전능자 하나님을 만난 사건이 가장 충격적인 큰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작품에 대한 고뇌를 하지 않는다.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쁨으로 순종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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