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상황이 내 뜻대로 되도록 만들었고 누구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동생이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머리채를 잡고 100m 되는 거리를 끌고 집으로 오기도 했다. 동생은 내가 무서워 부모님께 이르지도 못하고 철저히 나의 하인이 되었다.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커서 초등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잘못된 행동도 많이 하였지만 매번 운 좋게 걸리지 않으면서 ‘누가 날 막을 건데?’ 하며 자신감이 커져갔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모두 마치고 내신과 수능 성적 둘 다 모두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전략으로 내 점수로는 절대 갈 수 없는 지방 국립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운 좋게 들어간 대학에서도 내 자신이 높아져있어 마음에 드는 친구들도 하나 없고 주변 사람들을 무시했다. 길을 지나가다 얼굴이 못 생기거나 여드름이 많거나 뚱뚱한 사람을 만나면 숨을 참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몸 안에서 한 바퀴 순회한 후 나온 공기를 마시는 게 역겨웠기 때문이다. 가끔 나도 모르게 그 공기를 마시면 헛구역질까지 했다.
그러다 같은 과 친구를 통해 교회 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형들은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을 얘기했는데 그 부활 얘기가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로웠다. 그래서 그 형들을 다시 만나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들이 말하는 것이 맞다면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것이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내가 주인인 삶에서 예수님이 주인인 삶을 살겠다고 입으로는 고백했지만 정작 내 마음 속에서는 ‘내가 정말 마음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시면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인해 남들은 세상의 즐거움을 다 즐기는데 나만 못 즐기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군대에 가게 되었고 재대 후 바로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많은 돈을 벌어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또 잘 풀리는 인생에서 큰 성공의 꿈을 품으며 다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다.
복학 후 수업을 듣는데 1학년 때 복음을 알게 해준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 친구와 함께 교회에 다니며 말씀들을 듣다보니 역사적인 부활 말씀이 다시 들렸다. 예수님은 정말 헛것을 하루 동안 보여 주신 게 아니라 제자들과 40일 동안 같이 지내셨고 500여명한테 보인 후 하늘로 올라 가셨다. 그 후 제자들은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오직 우리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만 전하며 순교한 것이기에 이 부활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 부활은 여러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대로 오셔서 다 이루신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관점으로 보니 예수님의 부활이 선명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은 이런 우리가 죄를 지으면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우리를 만들고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어떻게 이 말도 안 되는 사랑을 보여주셨을까? 이 사랑이 마음에 가득 차니 지금까지 내가 놓지 못했던 내 돈, 내 시간 등이 보이기는커녕 잡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천국이 선명하고 소망이 되었다. 그렇게 천국이 선명해지면 선명해질수록 내 주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지옥 가는 게 더욱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예수쟁이라는 무시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무시하는 말투로 예수쟁이라고 놀리는데도 이것이 너무나 기뻤다. 내가 예수쟁이라고 계속 불려졌으면 좋겠다. 내가 놀림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어서 행복하고, 오히려 언제 어디서든지 더 당당히 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나를 통해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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