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27년 충남 서천에서 6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야학을 하여 16살에 초등학교 4학년에 들어가 여자 중학교에 진학했다. 당시는 일본 치하여서 강제로 일본 이름으로 바꿔 불렀고 단체로 신사참배도 했다. 일본은 우리나라 남자들을 끌고 가 전쟁에 보내거나 탄광으로 끌고 가기도 했다. 여자들을 정신대에 끌고 갔다는 말도 들었는데 다행히 나는 끌려가지 않았다.
세상은 온통 무법천지였다. 나는 늘 집에 숨어 살았지만 부모님은 정신대에 끌려갈까봐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그러다 8·15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다시 6·25전쟁이 일어나 나는 남편과 이별을 했다. 그 때 헤어진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한밤중에 인민군들이 수류탄과 총을 들고 들이닥쳐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남편이 없자 둘째를 임신한 나를 조사할 것이 있다며 파출소로 끌고 갔다.
큰 딸을 등에 업은 채 벌벌 떨며 뜬 눈으로 밤을 새고 겨우 풀려났다. 이웃 동네에서는 인민군들이 창고에 장로와 성도들, 경찰들을 몰아넣고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 중에는 먼 친척도 있었다. 매일 B29 폭격기 소리에 떨고 밤에는 불도 켤 수 없는 공포와 염려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났고 몇 년 후에 재혼을 해서 막내딸을 낳았지만 남편의 외도로 헤어지고 막내를 데리고 홀로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나갔었지만 전쟁을 두 번 겪는 동안 나도 모르게 교회와 멀어졌다. 그렇게 몇 십년이 흘렀다. 허리와 온 몸이 아파 거동이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막내딸이 있는 춘천으로 갔다. 누워서 3개월 정도 지내면서 딸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 말씀 동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그 때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다 가셨다. 그런데 그냥 가시지 않고 부활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고 가셨다’는 말씀이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말씀에 깜짝 놀랐다. 부활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구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너무나 중요한 말씀임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부활은 마치 내가 겪은 8·15해방과 6·25전쟁처럼 분명한 사실이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끝났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것을 믿을 수 있구나! 성경의 모든 말씀도 부활로 믿을 수 있는 거구나!’ 너무나 큰 소망이 생겼다. 교회 지체 중에 나를 치료해 주던 한의사 자매님은, 예수님께서는 우리 주인이 되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그분을 마음의 주인으로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 된 죄를 회개해야한다고 했다. 곧바로 ‘아멘’하며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예수님을 영접하니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임했다. 기적같이 건강도 회복되어 새벽기도를 포함해 모든 예배에 참가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두 딸들을 위해서도 매일 기도하고 있고, 동생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날마다 복음을 전하고 있다.
어느 지체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기 전에 간증을 남기는데 꼭 간증을 하시면 좋겠어요. 어머니. 꼭 하세요!” 이 말을 듣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많이 나갔던 TV 간증 프로그램에 나가 간증도 하였다. 정말 하나님께서 다 해 주셨다.
내 나이 올해 92세다. 온통 걱정뿐이었던 내가 늦게나마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과 함께 살게 되니 감사 또 감사하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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