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혼자 힘들게 우리 삼 남매를 키우셨다. 엄마가 돈을 벌려 나가면 집안일은 항상 언니와 내 몫이었다. 어려서부터 설거지를 하고 도시락도 혼자 싸야 했다. 언니는 산업체 고등학교에 진학해 주경야독하며 힘들게 살았다. 그러나 경제관념이 없는 오빠는 계속 빚을 져 집안 형편은 날로 악화되었다. 내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오랜 기간 병원 생활을 할 때도 오빠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동창을 만났다. 교통사고 후 죽음의 공포에 있던 내게 친구가 들려준 복음은 새로운 소망을 주었고, 결국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다. 그즈음에 오빠의 이혼으로 조카들을 내가 돌보게 되었다. 엄마의 퇴직금마저도 오빠의 빚으로 다 사라지니 오빠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결국 빚에 견디지 못한 오빠는 아이들을 남기고 훌쩍 집을 떠났다. 그때부터 엄마와 나는 두 조카를 키웠는데 늘 돈에 대한 염려가 들어왔다. 빚은 있는데 수입은 한정되어 있고 조카들을 말씀으로 인도하며 잘 길러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고린도후서 4장의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라는 말씀으로 부활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망한다고 했다. 순간, 내가 지금 초점을 예수님의 부활에 맞추지 않고 내 상황과 환경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이 두려워 도망갔던 제자들을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만들었던 부활, 예수님을 미쳤다고 욕했던 동생 야고보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굴복했던 부활, 예수님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사울을 사도 바울로 변화시킨 부활에 집중하니, 부활하신 분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전능자 하나님이심이 정확해졌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나의 주인이셨다.
그런데 나는 내가 주인 되어 물질도, 조카들도 내 것으로 생각하며 지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맡기라는 하나님 앞에 ‘아니에요,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예요’ 하고 있었다. 그때 성령께서 내 마음, 내 뜻대로 산 죄가 어떤 죄인지를 선명하게 보여 주셨다. 내가 하나님 되려고 한 엄청난 죄였다. 이 사실이 알아지는 순간, 그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졌다. 정말 온 마음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진짜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니 물질과 조카들에 대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넘겨 드릴 수 있었다. 오빠에 대한 내 중심이 너무 악했음도 알아졌다. 미워하고 판단하고 무시했던 내 중심이 바로 바리새인이었다. 오빠에 대한 원망도 눈 녹듯 녹았고 오빠를 위한 기도가 나왔다. 나를 너무나 닮은 조카들을 오래 키우다 보니 어딜 가나 늘 아이 엄마 소리를 듣는다. 처녀로 너무 자연스럽게 ‘아줌마 월드’에 입성한 것이다. 엄마와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결혼하지 않고 조카를 기르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조카들과 있는 시간은 행복하기만 하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 조카는 늘 어두웠는데 지금은 밝은 모습으로 교회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7살이 된 둘째 조카는 처음 교회에 다닐 때 나쁜 꿈을 자주 꾸고 소리를 질러 밤잠을 설쳤는데 공동체의 중보기도로 단잠을 자고 예수님 안에서 그늘 없이 잘 자라고 있다. 지금은 어쩌다가 내가 먼저 잠들면 함께 기도하고 자자고 깨운다. ‘나는 고모가 제일 좋아, 그리고 할머니가 더 좋아, 그렇지만 예수님이 더더더 좋아.’ 그러는 조카가 너무 사랑스럽다.
혼자 살 때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힘들어졌지만 결혼 생각은 아직 없다. 조카들을 키우는 것이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기에 상황과 환경이 힘들어도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기쁘게 감당하고 있다. 오늘도 조카들이 복음의 일꾼이 되어 함께 오빠와 가족들을 살릴 동역자로 자라날 것을 소망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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