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나는 대학 시절 십자가 사랑에 감격해 교회 봉사도, 전도도 열심히 했다. 스물 여덟 살에 아는 교회 오빠와 결혼을 했는데 첫 딸아이는 생후 2개월부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병치레를 했고 함께 사는 시어머니와의 성격 차이도 힘들었다. 결국 신경성 위장병이 생겼다.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병원에 가니 위에 혹이 있다고 했다. “그럼 암일 수도 있겠네요?” 했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나오는데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렇게 건강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잠시도 나를 떠나지 않을 때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염려는 죽음의 공포를 몰고 왔다.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위내시경을 하며 큰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 엎드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교회생활만 했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없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아뢰라’, ‘항상 기뻐하라’고 했지만 도무지 되지 않아 미칠 것 같았다. 결국 내 의지로 염려를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새벽기도, 모든 예배, 제자훈련 등을 받으며 신앙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친정 오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서 의식을 잃자 가족력이 생각나며 또다시 염려와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그때 동료 선생님 한 분이 “우리의 바람은 꼭 깨어나시길 원하지만 하나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하면서 자기 누나의 죽음과 장례식 이야기를 하는데 죽음에도 담대하고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찬 사람을 본 적이 없던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얼마 후 참석한 한마음교회 수련회는 내 신앙의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새로운 마음으로 성경을 묵상하는데 언젠가 사도 바울이 목숨을 내놓고 사역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바울처럼 헌신하려고 애를 썼는데 수련회 둘째 날 갑자기 ‘왜 바울이 목숨을 걸고 그 고생을 하고 일생을 마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바로 그때 ‘그래, 부활을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모든 문제가 단숨에 해결됐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이 진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던 것이다. 성령께서 내 눈을 한 순간에 확 열어주셨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기도응답과 체험들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마태복음 12장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 곧 부활밖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임했다. 사도행전 17장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는 바로 부활이었다. 드디어 나도 모든 성경 말씀에 아멘했고 내가 주인 되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악랄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참 주인으로 모셨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주인이심이 명확해지니 내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염려가 저절로 맡겨졌다. 남편이 응급실을 갔을 때도, 막내가 오래 앓았을 때도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 염려만큼이나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 어머님과의 관계였다. 늘 어머님의 눈치를 살피며 원망과 불안 속에 살았는데 예수님이 내 주인이 되시니 나도 모르게 친정어머니께 했던 것처럼 어머니의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꼭 끌어 안아 드렸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눈 앞에서 실제가 되고, 모든 응어리가 단숨에 풀어졌다. 염려와 죽음의 공포 속에 살던 나를 찾아와 살려주신 예수님, 오늘도 그 사랑으로 주를 위해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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