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때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중국으로 갔다. 말도 통하지 않는 어린 나이에 친구 없이 외롭게 생활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중국에 전염병 사스가 번져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우리는 6년 만에 부랴부랴 귀국했다. 부모님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나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 때 수시로 전학을 다니다가 중학교 입학 시기를 놓치고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 학원에서 보냈다.
다행히 고등학교는 정상적으로 입학을 했지만 늘 싸우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학생들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관계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러다 들어간 대학은 신세계였다. 그동안 사귀지 못한 친구 사귀기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말이 없던 나는 어느 새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이 되었다. 외박은 기본이었고 며칠 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과 술로 보낸 적도 많았다. 나의 대학의 목적은 오직 친구와 술이었고 친구는 내 삶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던 우리 집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툭 하면 아빠의 멱살을 잡고 업어치기도 하던 엄마가 한마음교회에 다녀온 후로 싸움은 고사하고 오히려 항상 웃는 얼굴로 아빠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변한 것은 좋은데 시도 때도 없이 내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했다.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왔다. 전역 즉시 엄마는 ‘너! 춘천한마음교회에서 한 달 간 신앙 훈련을 받고 와라’ 했고 엄마의 이 결단을 꺾을 수 없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결국 6시간 버스를 타고 한마음교회에 갔다. 매일 새벽기도와 모든 예배 참석이 정말 힘들어서 당장 뛰쳐나가 친구들에게 가고 싶었지만 한 달만 버티자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세상을 즐기다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온통 친구들 생각만 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고 기쁨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간증은 서서히 나를 고민하게 했다. 훈련관에 함께 사는 형들이 예수님은 느낌과 감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증거로 믿는 거라고 계속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느껴지는 체험을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을 내 관점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확실한 증거! 부활 사건 앞에 나의 느낌과 감정은 전혀 필요가 없음을 성령께서 비춰주셨다. 예언된 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 나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정말 죄송합니다. 부활의 표적을 보여주셨는데도 내 생각과 기준으로 내가 주인 되어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지난 삶이 너무 회개가 되었다. 통곡이 나왔다.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명확해지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사실 얘기를 하고 나는 스스로 교회에 남았다. 그러다 명절 때 집에 내려가자마자 친구들을 불러 모아 복음을 전했다. “야, 너는 춘천 갔다 오더니 전도사가 돼서 왔냐?”고 했지만 술, 담배, 게임, 여자에 빠져 사는 친구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로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가 보이니, 그 사랑 앞에 정말 이 세상에서 나도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고 싶다는 고백이 나왔다.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내 삶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쁘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내 기준, 세상 가치관이 아닌,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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