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서울로 가고 남동생은 양자로, 나는 외갓집으로 가는 통에 온 가족이 뿔뿔이 헤어졌다. 화내고 싸우는 일이 많은 난폭한 외삼촌 때문에 외할머니와 나는 늘 마음 졸이며 살았다.
초등학교 때 교회에 나갔다. 천사 같은 얼굴로 찬양과 말씀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이 좋아 철야예배까지 참석했다. 어느 새 ‘믿음 좋은 아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대학 시절엔 교회와 선교단체 활동에 열정을 다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받고 선교사의 꿈을 꾸었다. 그런데 종갓집 종손을 만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지킬테니 이 사람과 함께 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며 결혼을 결정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니 염려했던 현실이 내 앞에 다가섰다.
남편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맨 앞에서 제사를 주도했고, 나는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내 발로 들어온 호랑이굴이지만 너무 후회가 됐다. 무서운 집안 어르신들을 보니 제사를 끊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혼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생각이 들며 점점 우울증에 빠져들었고 죄책감으로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힘든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고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심이 됐다.
어느 날, 남편 친구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증거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말했다. 과연 구약에 부활이 예언돼 있었고, 사도행전에도 제자들이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며 부활을 전하다가 순교했던 내용이 있었다. 그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신다는 확신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때, 이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다시 살 수 있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나는 그동안 우상을 섬기는 집에 시집 온 게 가장 큰 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회개하라고 하셨다. 결혼도 선교도 다 내가 결정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원망하는 나의 실체를 알게 됐다. 나는 즉시 내가 인생의 주인 되어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였다.
그 후, 내 신분과 삶의 목적이 선명해졌다. 나는 예수 안에 거듭난 새 피조물, 하늘에서 파송 받은 그리스도의 사신이었다. 호랑이굴 같은 종갓집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최고의 선교지였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다.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는 말씀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사로 인한 오랜 고민이 단번에 풀리면서 마음에 평강과 자유함이 임했다. 목사님은 “이 문제는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제사로 잡고 있는 영적 세력과의 싸움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여곡절 끝에 제사를 끊었다. 물론 엄청난 핍박과 고통을 받았지만 그 때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평생을 종갓집 며느리로 사셨던 시어머님도 7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도 생각할수록 눈물만 난다.
지금 우리 집은 제사 대신 작은 교회의 예배 처소가 됐다. 비록 바라던 선교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남편과 같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종갓집 장손의 집에서 제사 대신 기쁨의 찬양을 부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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