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한 시민단체를 방문했다가 ‘교통사고 유자녀 돕기 운동’에 비전을 갖고 시민운동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가 시민운동을 통해 실현된다는 생각에 사명감을 갖고 열정을 쏟았다. 제대로 일을 하고 싶어 사회사업학 석사 학위와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건설교통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어느 해 유자녀캠프에 자원봉사를 온 남자를 만나 박사과정도 포기하고 결혼을 했지만 시어머니의 언행은 나를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했다. 게다가 폭주하는 일로 유산이 돼 수술까지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일이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에 바로 다음날 출근을 했다.
그 때 유치원에 다니는 첫째 아이가 불안증세로 치료가 필요하게 되자 모든 걸 내려놓고 남편의 근무지로 이사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께서 대장암 말기진단을 받고 10개월간 투병 끝에 소천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반대하셨던 시민운동에만 빠져 맏이로서 아무 것도 해 드린 게 없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물론 그 때 나는 천국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러던 중 춘천한마음교회에서 신앙훈련을 받던 여동생과 한 자매님을 통해 부활복음을 들었다.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나와 연합돼 있다는 성경 말씀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전능자 앞에 서니, 나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주인이 돼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았던 악랄한 죄인이었다. 나는 가장 교만한 자였고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었다.
“내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용서해 주세요.” 내가 주인 되어 행했던 죄악의 실상에 가슴을 치며 통회의 눈물만 흘렸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니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아멘’으로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동안 복음 한 번 전해보지 못했다. 교통사고 피해 가정들이 당하는 고통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복음을 전하고 매주 집에서 예배도 드린다. 아이들도 복음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세상의 이론과 교육철학, 그리고 내 의지와 신념을 다 내려놓고 말씀으로 기른다. 그리고 시댁제사도 더 이상 드리지 않게 됐다.
얼마 후 시어머니가 패혈증으로 쓰러졌다. 중환자실에서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주님께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의 중보기도로 깨어나셨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양 손가락과 양 발을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겠다는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며 진정으로 시어머니를 섬길 수 있었다.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을 싫어하셨던 시어머니도 이제는 ‘마음에 누가 계시냐’하면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지’라고 고백하신다. 남편도 오랜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주님께 돌아와 나의 동역자가 됐다.
시민운동이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일이라며 사명감으로 모든 열정을 쏟았는데 진정한 정의와 공의는 바로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했던 사도 바울처럼 한 손에 복음을 들고, 한 손에 사랑을 들고 오늘도 ‘푯대’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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