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쪽 귀가 작은 소이증과 안면 비대칭으로 말할 때 입이 틀어지는 외형적 이상으로 어려서부터 힘든 생활을 했다. 아이들은 “반쪽 귀, 반쪽 귀”하며 놀렸고, 버스나 기차를 탈 때도 귀가 가려지는 창가 쪽을 찾아 앉았다. 자꾸 얼굴이 비뚤어지다보니 사람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아 점점 소외되고 매사에 자신감도 없었다.
이렇게 ‘놀림’과 ‘눌림’의 삶이었지만 유일한 기쁨은 교회 다니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놀리지 않아 마음이 편해졌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교회 차량을 운전하고 주일 학교 교사도 하며 모든 일을 다 했다. 봉사로는 교회에서 나를 따라 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직장 후배 동료를 만났는데 기쁜 소식이라며 자신 있게 예수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나도 신앙생활 좀 해 봤거든,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네”하며 비웃어 넘겼다. 그렇지만 이 친구의 확신 있는 말과 행동에 신뢰가 갔고 시간을 정해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후배는 예수님이 부활 하셨다는 얘기만 계속 하고, 죄는 예수님 믿지 않는 게 근원적인 죄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결국 “나도 고린도전서 15장이 ‘부활장’인거 알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가 뭔지 나도 알고 있다”며 짜증을 냈다. 그러다 어느 날 요한일서 3장16절을 같이 읽고 나서 느닷없이 “형님, 저는 형님을 위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뭐야. 목숨이 열 개라도 되냐”고 답했다. 정말 기가 막혔다.
또 어떤 날에는 “형님은 구원 받은걸 어떻게 믿어”라고 묻기에 나는 자신있게 “그야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니까”라고 답해줬다. 후배가 “그럼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걸 어떻게 믿어”라 하면 나는 “하나님 말씀이니까 믿는 거지 뭐”라고 했고, 또 “하나님 말씀인지 어떻게 알고 믿어”라 물으면 “하나님 말씀이잖아”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라는 사도행전 17장에 있는 말씀을 보여줬다.
“형,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어.” 확신에 찬 그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내게 선명하게 보여 주시는 것 같았다. “아!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구나.” 드디어 부활이 내게 실제가 됐다.
교회에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다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군인들을 보고 “저 지옥에 떨어질 놈”하며 저주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게 아닌가. “예수님, 당신을 짓밟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왜 기도하십니까. 그냥 지옥에 떨어지게 놔두세요.” 그 순간 성령께서 로마 군병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나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여전히 내가 주인 되어 살았던 모습. 나는 하나님께 그대로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 되어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모셨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니까 소이증으로 인한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대화를 하다가 입이 틀어져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고 기쁨 가운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말기 암인 아버지께 복음을 전하여 천국에 가셨고, 나처럼 청력이 낮고 말이 어눌한 동생도 예수님이 주인이라 고백하게 됐다. 자신감 없이 살던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기쁘고도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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