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적었던 우리 집 분위기는 사람들을 불편해하는 나의 인간관계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낯가림이 심하니 친척들이 모일 때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폐쇄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됐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점점 심해져 갔고 아버지와도 보이지 않는 큰 담이 생겼다. 가족 간 대화는 거의 없이 늘 어두운 분위기가 감쌌고 누나와 다툰 후에는 7년 동안 냉전이 지속되기도 했다.
대학생활도 무기력하게 보냈다. 그러다 친구들 모습을 보며 나도 연애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동네친구의 지인인 여자와 술자리를 같이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여자가 내 팔짱을 슬며시 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연애를 시작했다.
달콤한 이성교제를 꿈꿨지만 매일같이 술독에 빠진 여자친구의 뒤처리로 오히려 힘들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갈 때 쯤 난데없이 여자친구가 교회에 다닌다고 말했다. 주중에 작은 교회 예배를 드리고 주말에도 교회에 가다보니 데이트 시간은 자연 줄어들었다. 갑자기 이게 뭔가 하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만나면 예수만 말하는 여자친구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함께 교회에 갔다. 마음 없이 따라다니면서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씀을 막연히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에도 굳은 마음의 빗장은 풀리지 않고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게 부담스러운 ‘철저한 주변인’ 생활을 했다. 열정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지체들의 모습도, 그들과의 대화도 내겐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러다 작은 교회 예배 때 성경이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임을 알게 되면서 거부감은 조금씩 사라졌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 등과 말씀이 부딪치면서 의심이 몰려왔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풀리지 않는 의심에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그렇게 강조하는 예수님의 부활이 해결되지 않으니 혼미만 거듭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주인 되어서 내 생각을 잡고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엎드렸다. 그 때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는 말씀이 임하며 부활이 내게도 실제가 됐다.
예수님의 부활은 전능자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내 죄를 사하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었다. 그동안 내가 주인 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짓밟은 나의 중심을 성령께서 알려주셨다. 그리고 왜 내가 만든 틀 속에 갇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살았는지도 정확하게 인지됐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됐다. “하나님! 다시는 내 마음 내 뜻대로 살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내가 주인 되어서 예수님을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마음 중심에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왔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니, 내가 단절하고 산 사람들이 내가 살려야할 영혼이라는 게 보였다. 누나와의 냉전도, 아버지와의 관계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회 지체들이나 작은 교회 식구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며 내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한 삶을 살게 됐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복음을 들고 어둠에 있는 영혼을 향하여 달려갈 것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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