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려심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나를 희생하면서 적극 도와주었다. 준비물을 안 갖고 오는 친구에게 내 준비물을 다 주었고, 학교 행사 때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시켜 돌리고 예쁜 봉투에 간식을 넣어 포장해 나눠주었다. “주은아 너밖에 없다. 네가 최고다.” 이런 말을 듣기 위해 온갖 신경을 다 썼다.
반면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남을 싫어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은 무조건 나를 좋아해야만 했다. 그래서 상대가 잘못해도 화가 풀려 웃을 때까지 무조건 미안하다고 했다.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은 병적으로 발전했고, 어느 날은 드라마의 쓰러지는 여자 주인공처럼 나도 그대로 해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화장실에서 쓰러지는 연기를 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달려왔고 119 구급차가 와서 병원에 실려 가 링거까지 맞았다. 이 일로 친구들의 관심이 깊어지고 적극 도와줄 때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매사에 이렇게 사람의 말과 행동에 신경을 쓰다 보니 친구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많았다. 친구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인터넷에서 자살하는 방법을 검색도 해보고, 힘들 때면 베란다에 올라가 아래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이없는 일도 했다.
친구관계로 힘들어하는 것을 본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건 오히려 엄마에 대한 짜증이 되었고 결국 반항으로 나타났다. 막말도 하고 심지어 몸싸움도 했다. 나중에는 노트에 엄마 욕을 가득 써서, 보시라고 책상에 펼쳐 놓기도 하고 욕을 적은 문자를 수십 통씩 보내기도 했다. 엄마보다 친구가 중요하니 잘못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너무 힘들어 한마음교회 수련회에 갔다.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하셨지만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나님 저 도저히 부활을 못 믿겠어요.”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부활은 내 느낌과 노력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에 기록해두셨고, 2,000년 전에 보이셨고 그것을 제자들이 증언했음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였다. ‘아! 부활이 진짜 일어났구나! 역사적 사건이구나!’ 놀랍게도 내게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목사님의 예수님이 원래 나의 주인이라는 말씀 앞에 그대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신데 내가 관심받고 싶다고, 사랑받고 싶다고 ‘나, 나’ 하며 내가 주인 되어 살아왔던 것이다. 남을 위해 산다고 한 것이 결국 나를 위해 산 것이었다.
“하나님!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내가 주인 되어 살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예수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나는 내가 주인 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다.
지금 나는, 교회 기숙사에서 많은 지체들과 마음을 나누며 기쁘게 지낸다. 엄마에게도 진심으로 사과 드렸다. 욕으로 가득한 문자가 아니라 하트가 가득한 문자로 안부를 묻고, 말씀으로 교제를 하며 친구 같은 모녀로 지내고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복음 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오직 내게 주신 사명에 목숨 거는 자가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관심받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나를 변화시켜 주신 예수님이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도 주님의 뜻에만 순종하는 사명자로 살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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