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를 키우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냈다. 아침마다 큐티를 하고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 마음은 열리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의 틀이 강하고 사람들을 보고 느낀 대로 판단했던 나는, 인간관계에서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다 불화가 생겨 상대방이 사과를 해도 내 마음에서 늘 받아들이지 못했다. “원희는 겉과 속이 달라.” 하는 말도 자주 들으며 어느 새 나는 문제 있는 아이로 찍혔고, 그 일로 결국 다른 대안학교로 옮겼다.
두 번째 학교에선 찬양과 말씀 통독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도 배울 수 있어 무척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역시 동일한 문제로 힘들어졌다.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리만 들리면 역시 마음을 닫고 친구들과 소통하지 않았다. 열심히 기도하고 은사 집회, 치유집회, 단기선교도 갔다왔지만 인간관계의 문제 앞에서는 늘 와르르 무너졌다. 게다가 앞날에 대한 걱정과 염려까지 겹쳤다.
다시 학교를 그만두고 나와 다른 대안학교 한 곳과 일반학교 한곳을 잠깐씩 다니기도 했지만 똑같았다. 극심한 좌절감이 몰려왔고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다섯 번째 대안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았고 결국 또 다시 학교를 나오고 말았다. 기독교 대안학교에 간 것에 대해 후회가 들고 하나님과 부모님을 원망하며 마음은 점점 우울해졌다. ‘나는 왜 살아야 하나.’ 하며 자살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엄마의 권유로 한마음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 목사님의 모든 말씀은 부활이 중심이었다. 부활을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부활과 나의 삶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사람을 판단 정죄 원망했고, 수시로 분을 폭발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말씀도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복음으로 변하는 지체들을 보며 나도 정말 변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내 중심을 보셨는지 놀랍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불과 두 달이 안 돼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했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 순교까지 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제자들은 분명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본 게 틀림없었다.
“하나님, 저는 왜 안 돼요? 너무 답답해요. 저도 변하고 싶어요.”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너는 왜 부활을 믿지 못하느냐? 내 손과 발을 봐라. 부활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예수님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 예수님이 진짜 부활하셨구나! 예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며 바로 회개가 되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그러자 바로 내가 왜 인간관계에서 넘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으니 삶이 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자유로워졌으며 스트레스와 불안감도 사라졌다. 성적도 올라 장학금도 받았다. 대안학교에 보낸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사라지고 가족들과 전도지를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 언니들과 함께 대학교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며 인간관계에 막혀있던 나의 삶을 바꾼 것은 영성 훈련도 프로그램도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이었다. 그 예수님을 자랑하고 전하는 일에 내 나머지 모든 인생을 드리고 싶다. 내 삶에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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